2023.7.9 요한복음 19장 25-27절 "새로운 가족"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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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26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27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요한복음 19:25–27 (ESV)
25 but standing by the cross of Jesus were his mother and his mother’s sister, Mary the wife of Clopas, and Mary Magdalene.
26 When Jesus saw his mother and the disciple whom he loved standing nearby, he said to his mother, “Woman, behold, your son!”
27 Then he said to the disciple, “Behold, your mother!” And from that hour the disciple took her to his own home.
서론
오늘 오후 예배에 나오신 성도님들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오늘 예배 후에, 새가족 수료식이 있습니다.
여기에, 새가족분들이 와 계신데요. 영도교회의 새로운 가족이 된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녔는데요. 어려서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 “형제님, 자매님”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저에겐 “친 형”이 한 명있는데요.
다른 누군가에게 “형제, 자매”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 어색했습니다.
“형제, 자매”라는 말을 왜 사용하는지?
“예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가족으로 만들어 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Just as 우리가 육신적으로 태어나면, 육신의 가족이 생기듯이,
우리가 영적으로 거듭나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면, 영적인 가족, 하나님의 가족이 생긴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도 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새로운 가족”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우리가 신앙 생활 하면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는데요.
우리는 하나님께서 만나게 해 주신 새로운 가족입니다.
25-27절을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25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26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27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심한 채찍질을 당하셔서, 제대로 숨을 쉬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그 심한 고통 가운데에서도, 그의 마지막 사명을 위하여 말씀해주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가상 칠언 중에 세 번째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 (by the cross of Jesus), 누가 있었는가?
예수님의 어머니, 이모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 (사도 요한)가 서있었습니다.
십자가 아래에는?
1) 예수님의 십자가형을 구경하는 사람들과 (백성들)
2) 예수님을 모욕하고 비웃고, 희롱하는 사람들 (관리들과 군인들)
3) 예수님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여인들과 요한)
누가복음 23 장 27절을 보면,
이 사람들이 예수님을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울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눅23:27 “27 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오는지라”
이때,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 보면서,
십자가 곁에서, 가슴을 치면서 울고 있는 자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쳐다 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고통 가운데에서 말씀하였습니다.
1) “여자여! 보소서, 당신의 아들입니다”
요한복음 19:26 (ESV)
26 When Jesus saw his mother and the disciple whom he loved standing nearby, he said to his mother, “Woman, behold, your son!”
예수님의 팔은 십자가 위에 양 쪽으로 묵여서, 못 박혀 있었습니다.
만약에 손이 묵여 있지 않았다면, 손으로 이렇게 사도 요한을 소개 하였을 것입니다.
2) 그리고, 또 그의 제자 “사도 요한”을 처다보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너의 어머니이다.”
요한복음 19:27 (ESV)
27 Then he said to the disciple, “Behold, your mother!” And from that hour the disciple took her to his own home.
여기서, 예수님은 자신의 어머니를 “여자여”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여자여”라는 말을 들을 때에, 굉장히 당황스럽습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일반적으로 여인들을 (사마리아 여인, 막달라 마리아)을 부르실 때에 Γύναι (여자여) 라는 단어를 사용하였습니다.
이 말 Γύναι (여자여) 을 예수님은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에게도 사용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자신이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면서 사용했던 말 입니다.
요한복음 2장,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예수님은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이야기하는 어머니에게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요 2:4 “4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그러니까, “마리아”가 이 말을 들을때에, 마리아는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였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성령으로 잉태하였기 때문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누구보다도 알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마리아 만큼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정확히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 하실때,
마리아는 지금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말하고 있는 것을 이해하였습니다.
그리니까, 이 말 (여자여! 보소서, 당신의 아들입니다)은 /
1) 더 이상 나 (예수) 를 당신의 아들로 생각하지 말라는 말이고,
2) 이제는 사도 요한을 아들 처럼 여기고 살라는 말이고,
3) 또 예수를 영접하고 믿는 자들은 당신의 아들로 여기고 살라는 말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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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요한에게 부탁한 말씀 (보라 너의 어머니이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그 자리에 우리가 있었다면, 우리는 이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아 이제, 예수님이 죽으시니까, 이제 예수님의 어머니를 나의 어머니로 생각하고 잘 보살펴 달라고 부탁하시는 가 보다?
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 말은 보통 이렇게 해석되어 왔습니다.
1)예수님은 자신의 어머니를 깊이 사랑하였습니다.
2)예수님은 어머니의 앞날을 걱정하였다.
3)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죽는 순간 까지도, 어머니를 돌보아 줄 사람이 필요했다.
4) 그런데 그때, 사도 요한이 십자가 곁에 있어서, 요한에게 부탁한 것이다.
5) 요한아 이제 내 어머니 (마리아)를 잘 부탁한다. 네 어머니 처럼 잘 보살펴 주어라
하지만, 이러한 해석은 너무 즉흥적인 해석입니다.
성경은 반드시 먼저 계시를 주시고, 성취한다는 관점에서 오늘 본문도 바라보아야 합니다.
(계시) 마태복음 12 장을 보면,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마12:47 “47 한 사람이 예수께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당신께 말하려고 밖에 서 있나이다 하니”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마태복음 12:48–50 (NKRV)
48 말하던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시고
49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이르시되 나의 어머니와 나의 동생들을 보라
50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
예수님은 이미, 예수님의 형제와 자매의 범위를 육신적인 관계가 아니라,
영적인 관계로 더 확대하여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가족 -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 -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것,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
그러니깐, 지금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십자가에 위에서 이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 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고, 죄 용서함을 받고, 하나님의 가족이 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 하신 후에, 자신의 제자들을 “자신의 형제들”라고 불렀습니다.
요한복음 20:17–18 (NKRV)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18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가족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러니까, “보라 너의 어머니이다” 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제 예수님을 영접하였고,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과 영적인 가족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가족이 된 사람들입니다.
2. 그런데 예수 믿는 우리가 서로 가족이라고 하는데?
너무나 나와는 상관 없는 말처럼 들리는 것 같습니다.
보통 주일이 되면, 성도님들이 교회에 와서 모여서 가족 처럼, 만남을 가지는 경우도 있지만/
또 설교 마치고 바로 집으로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서로 가족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우리는 여기서 십자가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두 번째 기억해야 할 것은/
2. 예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의 가족에게 책임을 다하는 것 까지 포함합니다.
보통 우리는 예수 믿는 것이 뭐라고 물어보면?
1)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라고 해서 믿는다.
2)예수 믿으면 천국 간다고 해서 믿는다.
그런데/ 예수 믿는 것은/
1) 우리가 예수님 영접하고 죄 용서함을 받는 것이고
2)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이고
3) “하나님의 가족에게도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1)죄용서함과 관련하여, 우리는 가상칠언중에 첫 번째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눅23:34 “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부연설명
2)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과 관련하여, 가상칠언 중에 두 번째 말씀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
39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40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41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42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3) 하나님의 가족이 생기는 것과 관련하여서,
27절을 같이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9:27 (NKRV)
27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예수님께서 제자에게 “보라 네 어머니”라고 말씀하시니,
사도 요한이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셨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집이라고 번역한 원어가 ἴδιος (이디오스)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집”이라는 단어는 οἶκος (오이코스)라는 단어가 사용되는데,
여기서 ἴδιος (이디오스) 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ἴδιος (이디오스) - 사전적인 의미 - “자기 자신의 것”
그러니까, 사전적인 의미로 보면
“그때부터 그 제자는 그녀(마리아)를 자신의 어머니로 받아들였다” 라고 해석하는 것이 더 적절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 주셨는데,
사도 요한은 그 말씀을 받아 들였고, 또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자신의 어머니”로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적용) 우리가 어떤 사람들을 새로운 가족으로 받아들인다고 생각해 보십시요.
이것은 곧, 그 사람의 인격이나, 개성을 다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ex) 얼마나 힘든 일이겠습니까?
남자와 여자가 처음 만나 결혼을 하기 까지 , 얼마나 사랑하면 결혼까지 하겠습니까?
그런데, 살다 보면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지 못하고,
내 중심적으로 그 사람을 바꿀려고 하다 보니까 다툼(싸움)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결혼한 부부도 가족으로서 참 감당하고 살아가는 것이 힘든데?
영적인 가족으로 누군가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은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어땠을까요?
예수님의 말씀대로 마리아를 “자신의 어머니”로 받아들였지만, 항상 기뻤던 일만 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새로운 가족이 생긴다는 것은 “기쁜 일” 이지만, 우리는 반드시 그 가족에게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1 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과,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님의 동생들도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에 힘썼습니다.
이 때에도,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자신의 어머니 처럼 신경쓰고 보살펴 주었을 것입니다.
교회 전통에 따르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예루살렘에서 살다가, 예수님 부활 하시고 12년 후에 죽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사도 요한이 장례를 다 치루어 주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였고, 끝까지 책임을 다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믿는 것이 아닙니다.
1)나의 죄 용서해 주신 예수님!!!
2)나의 삶에 주인으로 찾아 오신 예수님!!!
3)이제는 나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주를 위해 산다고 하는 데?
정작 우리 곁에 있는 가족에게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살고 있는지?
오늘 새로운 가족이 우리 곁에 있습니다.
그 새로운 가족을 진심으로 환영해주고, 관심을 가지고, 사랑의 관계를 맺어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3. 마지막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기억해야 할 것
가족은 사랑의 공동체 입니다.
25-26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9:25–26 (NKRV)
25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26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요한복음 19:25–26 (ESV)
25 but standing by the cross of Jesus were his mother and his mother’s sister, Mary the wife of Clopas, and Mary Magdalene.
26 When Jesus saw his mother and the disciple whom he loved standing nearby, he said to his mother, “Woman, behold, your son!”
여기 보시면, 예수님을 따라왔던 사람들을 보십시요.
1)예수님의 어머니 - 마리아는 얼마나 예수님을 사랑했을 지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2)막달라 마리아 - 일곱 귀신이 걸렸던 여자인데, 예수님께서 그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눅8:2 “2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예수를 사랑하는 자
3) 사도 요한 - 요한 복음에서 자신을 설명하는 단어? 예수님께서 사랑했던 제자
요13:23 “23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가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
이 사람들의 공통점이 무엇인가요?
모두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했던 사람들입니다.
EX) 물론 사도 요한도 예수님을 버린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마26:56 “56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BUT,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십자가 발 앞에 돌아온 제자 였습니다.
사도 요한이 이렇게 예수님의 십자가 발 앞에 다시 돌아올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사랑이 그들 돌이키게 한 것이죠.
마리아나/ 사도 요한은 실제로 예수님의 육체를 보았고,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하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눈으로 예수님을 본 적은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순종할 수 있는 이유?
성령의 도우심으로 /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죠.
벧전1:8 “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우리 모두는 마리아와 사도 요한과 같이,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새로운 가족 또한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EX) 미국에 가면 많은 한인 교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 사는 교민들 사이에는 BLACK LISTS 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교회에 오는 이유가? 사업에 도움이 될까하고 오거나, 교회에서 도움을 얻기 위해서 오는데,
더 이상 도움 받을 게 없으면 다른 교회로 옮겨 다닌다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서 피해를 받고,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엄청 많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피해를 받은 사람들은 누군가 새로 교회에 오게 되면 마음을 쉽게 열지 못하고 닫아버리는 것 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 인것도 알고, 또 우리가 가족으로서 사랑을 나누어야 하는 것도 아는데,
가족의 구성원으로 부터 상처를 입게 되면, 쉽게 그 상처가 아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EX) 육체적인 가족 관계에도 그렇지 않습니까?
돈문제나 부모 모시는 문제로 가족관계 금이 가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정말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오직 사랑으로만 섬기는 자세로 서로를 대하여야 합니다.
EX) 오 권사님 셀
어떤 권사님이 구역장 이신데, 이 분은 40년 넘게 구역원을 알아왔습니다.
이 구역장님은 40년 넘게 부모의 역할을 감당해 오고 계시는데,
이 구역원은 계속 받으려고만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성장하고, 자기도 사랑을 베풀 줄 알아야 하는데,
어린아이 같이 계속 사랑을 받으려고만 한다는 것이죠.
우리가 서로 사랑을 주고 받지만, 사랑을 베푸는 사들이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행20:35 “35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예수님을 보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서, 그의 몸과 피를 다 내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섬긴다는 것이 참 힘든 일이지만,
주님께서 우리가 서로를 사랑으로 섬기시기 원하십니다.
[적용] 오늘 새가족 수료식을 하는데요.
이 자리는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을 우리 영도교회 새로운 가족으로 환영하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가족 이름도 알아야 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알아야 하고?
여러가지 알아가야 할 것이 많습니다.
영도교회 - 교회 규모가 있기 때문에, 누가 누군지 잘 모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작은 교회 - 누가 누군지 훤히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영도 교회는 서로 사랑으로 섬기기 위해서 “전도회와 셀 모임”을 가지고 있습니다.